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폰 파펜 (문단 편집) ==== 히틀러 내각 ==== 물론 히틀러 내각이 용인된 이유도 있었다.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히틀러 내각을 노련한 힌덴부르크와 보수 관료들이 '''정치 초보 히틀러를 조종하는 괴뢰내각''' 정도로 생각했으며, 파펜 본인도 그런 목적으로 히틀러의 연립내각을 탄생시킨 것이었다. [[좌파]]인 사민당과 공산당 또한 저질선동가 히틀러는 밑천이 드러나면 곧 몰락할 거라고 생각하고 힌덴부르크와 파펜의 [[꼭두각시]]라고 봤다. 사실 이런 생각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. 연립내각에 [[나치당]] 인사는 총리인 히틀러 포함 달랑 3명뿐이었고, 국방장관은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인선한 제복군인 출신 [[베르너 폰 블롬베르크]], 나머지는 모두 파펜이 인선했기 때문이다. 그러나 제복군인인 블롬베르크는 친나치당 인사였고, 히틀러를 제외한 나머지 2인 중 [[빌헬름 프리크]]는 내무장관직을, [[헤르만 괴링]]은 무임소장관 및 신설될 항공교통장관에 프로이센 내무장관을 겸직했다. 다른 나라도 그렇듯, [[바이마르 공화국]]도 [[내무부]]가 경찰을 통제하고 있었으니 '''국가경찰력이 통째로 나치에게 넘어간 것이다.''' 프로이센 내무장관에 취임한 괴링은 잘 훈련된 베를린 [[무장경찰]] 15,000명을[* [[경찰]]이라곤 하지만 [[기관총]]에 [[장갑차]]까지 보유했다. 시가전에서 공산당 정치깡패 '붉은 전사 동맹'이나 돌격대는 그냥 쳐바르기 충분했다. 이미 [[1929년]]에 공산당의 베를린 폭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전력도 있다.] 손에 넣은 데다가 돌격대 [[SA]]를 프로이센 예비경찰로 임명해버린다. 물론 국방장관 블롬베르크도 친나치당 인사로서 파펜을 위해 히틀러를 견제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. 이래놓고 '히틀러 조종해야지~' 하고 있었으니 답이 안 나온다. [[파일:Dc3gbgf.png]] 당시 독일 내부의 시각을 보여주는 [[만평]] - 후겐베르크의 운전학원. 만평 속에서, 후겐베르크는 파펜에게 "저 초짜가 저기 앞에서 자기가 운전하고 있다고 한가하게 자뻑하고 있겠지만, 경제 과정의 확실한 운전은 우리가 하고 있지요!" 라고 말하고 있다. 이 만평은 후겐베르크와 파펜의 망상을 비웃는 당시 좌파 잡지 <[[전진]]>의 것이었는데, 결국 이 만평대로 [[허수아비]]가 된 건 파펜과 후겐베르크였다.[* <전진>은 [[파울 요제프 괴벨스]]의 언론정리 과정에서 강제 폐간되었다.] 엉뚱하게도 당시 [[영국]]과 [[프랑스]]는 주독 대사의 보고를 토대로 정확하게 사태를 인지했다. 히틀러가 절대 합법적이고 온건하게 권력을 유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. 그러나 이 두 나라는 그래봤자 그건 독일 국내정치고, 히틀러는 국제정치에선 암것도 모르는 생초짜에 협상 가능한 상대로 인식하게 된다. --결국 얕본 것은 같다-- 그리고 [[제2차 세계대전]]이 발발하게 됐다. 여담으로 [[체코슬로바키아]] 대사는 "별 일 아니다."라고 본국에 타전했다. 그리고 6년 후, [[뮌헨 협정]]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에 먹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